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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soo's 안양지역소개 및 유래

양지동(陽地洞) <안양3동>

2003.09.12 16:53 조회 수 2604 추천 45 / 0
참고 자료  

양지동(陽地洞) <안양3동>

 

양지동(陽地洞) <안양3동>

  안양공고 주변에 위치한 마을로, 안양3동 1.2.3.4.6.25.26.27통에 속해 있다. 이 마을은 조선조 제 2대 정종의 7남인 守道君의 증손이공(지제부수)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이래 원주 원씨 등이 세거했다.이 마을 명칭에 대하여 陽地, 陽智, 陽知, 陽至등 문헌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마을의 지세가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므로  陽地洞이라고 표기함이 옳다. 이곳은 1928년에 지금의 안양3동 부근에 安養産業社란 안양 최초의 공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공복직전에는 아사이학교가 설립
되었고, 광복 직후에는 안양중학교(1948), 안양공고(1949)등 많은 학교가 운집되어 있어 안양교육의 요람지로 변모되었다.
  양지동은 안양을 대표하는 시인 金大圭(1942- )의 출생지이며, 방송작사 李瑞求(1899-1981), 소설가 蔡萬植(1904-1950), 시인.평론가 鄭貴永(1917- ), 시인 성지조(1934- ) 등 문인들이 오랫동안 이곳에 살며 문학활동을 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채만식은 전북옥구 출신으로 <동아일보>.<조선일보>의 기자로 있으면서 1925년 단편 <<세길로>>로 조선문단지의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뷰했다. <<태평천하>>, <<허생전>>, <<아름다운 새벽>>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1938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탁류>>는 그의 대표작으로 현실을 비판하여, 풍류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채만식이 양지동에 이사와 살기 시작한 것은 1940년으로 그는 이해 6월 5일부터 8일까지와 6월 10일부터 11일까지 6일간 <매일신보>에 <安養卜居記>를 발표했다. 그 후 이듬해 3월에 양지동을 떠나 서울 광장리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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